부고에 대하여

소소한 글/일기 · 2019. 12. 12. 21:34

내겐 룸메의 소개로 같이 친하게 지냈던 룸메의 고향친구 A가 있다. 그 친구의 어머님의 부고를 받고 룸메가 대전으로 내려갔다. 며칠 전 고향친구에게 안 좋은 일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우리 사이에 불안하게 떠돌았던 기류가 쿵 하고 무겁게 짓누르는 기분이었다.

룸메는 검은 폴라티와 바지 위에 검은 코트를 껴 입으며, “이렇게 검은 옷으로만 맞춰 입는 것도 처음이네.” 라며 애써 가라앉은 분위기를 승화시켜 보려 했지만, 내 입에선 그저 영혼 없는 헛웃음만 나왔다. 전에 없이 나를 꼭 끌어안으며 “2주동안 잘 있어.” 하고 포옹하는 룸메의 팔은 불안한 나를 위로하는지, 불안한 본인에게 끌어안음을 주는지, 갈 곳 잃은 슬픔을 토로하듯 묵직했다.

죽음이란, 우리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고등학교 때, 반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신 적이 있었다. 항상 명랑하고 반 친구들 사이에서 분위기를 잘 잡는 친구였다. 개인적인 친분이 그렇게 깊은 사이는 아니었지만, 그 친구와 나 둘 다 일찍 등교하는 편이어서, 제일 먼저 빈 교실 문을 열고 신선한 공기로 환기를 하며 교실 불을 켜는 멤버였다. 덕분에 하루 중에 가장 먼저 인사하는 사이였는데, 그럴 때마다 항상 기분 좋은 웃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해 줬던, 웃음이 예쁜 친구였다.

그 친구의 어머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듣고, 우리 반 전체가 장례식장에 찾아가 조문을 드렸다. 마침 장례식장이 학교와 가까워서 수업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의 인솔 하에 조문을 드릴 다른 반 친구들과 함께 걸어갔었다. 이른 초봄으로 기억한다. 춘추복을 입고 조금 쌀쌀했던 기억이 나니까. 나는 누군가의 조문을 가는 것이 처음이었고, 아마 그때 함께 갔던 친구들 대부분이 그랬을 것이다. 장례식장을 가는 내내 각자의 머릿속엔 누군가를 잃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으로 분위기가 쳐져 있었기에, 날씨가 더 쌀쌀하게 기억에 남아있는 것도 같다.

친구 어머님의 영정사진 앞에서 몇 명의 친구들과 절을 드리고, 상주로 서 있는 친구와 친구의 언니, 이모 분께 절을 드리며 친구의 표정을 잠깐 볼 수 있었다. 나는 그 날 본 친구의 모습을 절대 잊지 못한다. 생기라곤 하나도 없는 얼굴색. 얼마나 울었는지, 울다가 지쳐 눈물도 더 나오지 않게 된 지도 며칠은 된 듯한 얼굴에는 그 어떤 표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현실이라는 시간이 흐르지 않고 있었다면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일 것만 같은 모습이었다. 절을 받은 후 검은 한복 상복과 하얀 리본핀을 머리에 달고, 밀짚인형처럼 주저앉은 모습이 너무나 신경 쓰였지만, 쳐다보며 동정하는 것은 예의가 아니란 걸 알았기에 애써 못 본 척 하는 수밖에 없었다. 같이 간 친구들도 무어라 이야기도 하지 못한 채 식사를 마치고 다시 쓸쓸한 길을 돌아 학교로 돌아왔다.

1주일 이상 가량이 지나고 친구는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어머님이 돌아가신 것은 지병으로 인한 것이었기 때문에, 그 전부터 며칠씩 학교를 빠졌던 터라 학교에서 친구를 보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내가 알던 밝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많은 친구들이 알게 모르게 그 친구를 많이 신경써주고,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럴 때마다 그 친구는 너무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애써 웃어 보였지만, 어떻게 봐도 애써 웃는다는 게 느껴졌기 때문에 더 짠하게 느껴졌다. 친구는 그 후로도 일찍 등교했다. 그 전처럼 웃으면서 인사는 했지만, 인사를 하고 나면 친구는 복도 창가로 가서 허공만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시간은 어떻게든 흘러 갔고, 친구가 허망하게 창 밖을 쳐다보는 동안 계절은 변해 벚꽃이 피었다 떨어졌다. 내가 좋아하는 친구였음에도 그 친구의 아픔을 완전히 이해할 수도, 공유해줄 수도 없었기에, 오랫동안 그 뒷모습을 지켜보는 것 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저 내가 지켜보는 것이 동정으로 느껴지지 않게, 내가 너의 슬픔을 혼자서라도 나눠 지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을 오해하지 않기만을 바랬다. 친구가 창 밖을 바라보는 시간이 짧아지는 데까진 6달 이상이 걸렸던 것 같다. 방학이 지나고 나선 전처럼 공허한 느낌은 메워졌지만, 예전으로 돌아가기엔 너무 많은 것이 변했고, 여전히 습관적으로 창밖을 잠깐씩 바라보곤 했다.

A의 어머님에 대한 부고를 룸메가 알리기 1주일쯤 전에, 잠시 룸메가 주말동안 대전에 다녀왔었다. 룸메에게서 구체적인 내용을 전해 듣지는 못했지만 아마 그때부터 불길한 예감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리라. 며칠 내내 뒤숭숭하게 침대에서 허공을 바라보는 룸메의 모습, 그리고 부고를 알리고 내려간다는 이야기를 전했던 카톡, 내려가기 전에 꼭 안았던 포옹이 하루종일 그 친구의 뒷모습과 상복을 입고 앉아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그렇게 앉아 있을 A와 식장을 방문하는 룸메의 심정도, 헤아리고 싶지 않아도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세상은 여전히 흘러가고, 누군가에겐 큰 일이 일어나는 동안 그게 가까운 사이든, 먼 사이든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할 일은 끝없이 다가온다. 큰 슬픔이 우리를 지배해도, 나의 시간은 나를 옮겨 놓고, 어떻게든 살아가게 만든다. 죽음에서 가까운 사람부터 먼 사람까지, 시간은 마치 블랙홀처럼 다르게 움직이는 것 같다. 하지만 식장을 찾아가지 못한 지금, 고인의 명복을 비는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남아 있는 사람의 시간을 평소처럼 흘러가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 감정만이라도 훌훌 풀어놓기 위해 이 일기를 쓴다.

많은 말을 얹지는 못하지만, A에게 앞으로 다가올 시간이 힘들 것을 알기에, 우리가 A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란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